요17:18
2008년 2월 18일 여는 예배
설교본문 : 요17:18
설교제목 : 우리의 사명은 전도이다
“아버지께서 너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저희를 세상에 보내었고”
18세기 실제로 있었던 한 등대지기의 이야기 입니다.
거친 파도가 몰아치는 바다에서 등대지기 홀로 외로이 등대를 지킬 때 남루한 옷차림이 할머니 한분이 찾아왔습니다. “지금 굶어서 죽을 지경이여. 기름이라도 주면 팔아서 끼니라도 대신할 텐데” 동정심에 등대지기는 기름을 조금 덜어서 할머니에게 드렸습니다.
며칠 뒤 등대지기의 초등학교 동창이 급히 찾아왔습니다. “기름을 조금만 주면 차가 돌아갈 텐데……. 자네가 좀 빌려주지 않겠나?” 등대지기는 인정 상 기름을 덜어 주었습니다.
며칠 뒤 아내가 찾아와 말하였습니다. 아들이 학자금을 내지 못하였다고 하여 기름을 팔아서 돈을 해주었습니다. 가족을 너무 사랑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날 밤 폭풍과 파도가 유난히 거세게 쳤습니다. 매우 험한 밤이었습니다.
다음날 아침에 무서운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어제 밤, 바다에서 큰 배 한척이 침몰하여 수많은 인명피해가 났다는 것입니다.
바다에서 배 한척이 폭풍과 함께 거친 밤을 보내는 동안 등대는 꺼져 있었습니다. 등대지기는 할머니에 대한 동정과 친구에 대한 인정, 가족에 대한 사랑으로 등대의 기름을 다 써버렸기 때문입니다.
정작 등대를 가장 필요로 하던 그 시간, 등대에는 기름이 없어서 불을 밝히지 못했고, 큰 배는 어둠 속에서 가야할 방향을 찾지 못하고 결국에는 침몰하고 말았습니다.
등대지기의 존재이유는 무엇입니까? 목에 칼이 들어와도, 아무리 급한 사정이 있어도 등대지기는 기름을 지켜서 불을 밝혀야 합니다. 이것이 등대지기의 사명입니다.
사람을 사명을 위하여 지음 받았습니다. 모든 사람은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목적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과 목적 없이 인생을 허비하며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역은 믿는 사람들과의 섬김이고, 사명은 믿지 않는 사람들을 향한 섬김입니다.
사명은 영어로 미션은 라틴어 [보내다]에서 유래되었다. 그러므로 사명은 예수 그리스도를 대표해서 이 땅에 보내지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그리스도에게로 보내심을 받은 자입니다. 예수님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하심이라”(눅 19장 10절)
왜 우리를 세상에 보내셨습니까? 바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대신 하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사람을 구원하기 위함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목적도 사람을 구원함이 되어야만 할 것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러러 내 중인이 되리라”(행1:8)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요 15:26)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유도 사명을 위하여, 즉 전도하기 위함입니다.
자동차 회사에서 직원에게 자동차를 만들라고 하였는데 직원들은 비행기가 더 비싸다고 비행기만 만든다면 사장은 기뻐하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전도하라고 하는데 나는 전도가 체질에 많지 않으니 다른 것으로 봉사하겠다고 하면 하나님은 기뻐하시지 않으실 것이고 우리의 존재 목적을 잃어버린 사람일 것입니다.
하나님이 교회를 주신 목적은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함입니다.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하고 나아가 복음을 전하기 위한 전초기지로 주신 것입니다.
교회의 사명중 하나가 바로 복음전파인 것입니다. 교회가 이 일을 위하여 부르심을 받았으므로 이 일이 가장 우선순위가 되어야 합니다.
가장 큰 계명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웃 사랑의 실천이 이웃에게 친절하게 대하여 주고, 양식을 건네주고 하는 것보다 주님을 몰라 죽을 영혼에게 주님의 생명을 불어 넣어 사람을 살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도는 해도 되고, 안 되고 가 아닌 우리 삶의 목적이요, 직업이요. 우리의 존재 목적인 것입니다.
동북교회는 그리고 신동중앙교회는 사람을 살리는 교회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목적이요, 사명입니다. 여기에 우리의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이 사명을 위하여 우리는 매일 안 믿는 친구를 위하여 기도하여야 합니다. 어떠하든지 전도의 기회를 가지고 전도하여야 합니다. 전도가 습관화 되어야 합니다. 또 전도에 우리의 시간도 돈도 집중하여야 합니다.
동북교회에는 선교 헌금이 있습니다. 오후예배에 드려지는 선교헌금은 모두 선교와 교육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모둔 헌금은 이웃을 살리는데 쓰여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학생이라도 감사를, 주일헌금을 넘치게 하기를 바랍니다. 힘닿는 대로 주님의 손에 들려지기를 원합니다.
연민 - 전도의 첫째 단계입니다.
그렇게 되기 위하여 먼저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믿지 않는 친구에 대하여, 가족에 대하여 연민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보시고 목자 없는 양으로 보시며 아파하셨습니다. 환자들을 보시며 불쌍히 여기시고 연민의 정을 가지시고 고쳐 주셨습니다.
사람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 이 마음이 전도의 첫 걸음입니다. 억지로, 강제로, 의무와 책임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 죽어져 가는 영혼들을 향한 애틋한 마음이 전도의 첫 걸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사람을 사랑하게 하여 달라고 기도하여야 합니다. 사람이면 무조건 사랑하게 하여 주세요. 우리 안에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게 하여 주세요. 죽어져 가는 우리를 보시고 안타까워 발을 둥둥 구르시다 이 땅에 직접 조롱과 천대와 멸시를 당하시며 오신 그 예수님의 마음이 친구와 이웃을 향한 우리의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4명의 친구들은 상처 입은 친구에 대한 안타까운 연민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들은 그의 친구를 예수님에게로 데리고 간 것입니다.
연민은 죄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을 보는 눈입니다. 우리가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이웃의 아픔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죽어가는 이웃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전도의 둘째 단계는 믿음입니다.
4명의 친구들은 예수님이 마을에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병든 친구를 병상에 뉘어 예수님께로 달려갔습니다. 그러나 많은 장애가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로 인하여 가까이 갈 수 없었습니다. 지붕에 올라가 지붕을 뜯어 병상을 내렸습니다. 4명이 병상을 들고 가는 것도 어렵습니다. 지붕에 올라가는 것도 어렵습니다. 아무리 조립식 건물이라도 지붕을 뜯으면 먼지, 석가래, 등이 예수님과 사람들이 모여 있는 방에 떨어질 것입니다. 사람들이 호통을 칠 것입니다. 그들의 체면은 말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체면과 어려움과 사람들의 비난보다 친구를 사랑하는 마음, 예수님이 고쳐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확실하였습니다.
예수님이라면 고쳐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이 문제의 해답입니다. 예수님 외에는 친구의 병은 고칠 수 없습니다. 이러한 확신이 있었기에 그들은 그들에게 쏟아지는 모든 비방과 눈총을 이길 수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거기서 나가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니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가로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들렸나이다. 하되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보내소서.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신대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가로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여자가 가로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여자야 네 믿음 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시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마 15:21~28)
예수님만이 해답이라는 그 확신이 주님에게로 사람들을 인도할 수 있습니다.
전도하면서 당하는 어떠한 어려움도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전도하면서 두려움이 있습니다. 수치심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들에게는 예수가 필요해, 예수님 외에는 대안이 없어, 누가 무엇이라 하여도 예수님만이 고칠 수 있고, 살릴 수 있다는 그 확신과 믿음이 우리를 전도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전도의 문을 막는 것 같습니다. 교회가 전도의 문을 막는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에게 사랑의 마음과 예수님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체면과 체통 때문에 찬송소리도 못 내고, 소리 높여 기도하지도 못할 때가 많지 않습니까?
4명의 친구들은 기도만 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병든 친구들을 예수님께로 데리고 나왔습니다.
여러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었지만 그들은 그 모든 것을 극복하고 주님에게로 데리고 나왔습니다.
교회가, 우리 자신이 불신자를 향하여 기도만 하여서는 안 됩니다. 기도한 후 그들을 데리러 가는 수고로움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명령하십니다. 길과 산울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전도를 위하여 우리는 힘을 모아야 합니다. 전도서 4장12절 말씀에 ‘한 사람이면 패하겠지만… 삽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전도대를 파송하면서 2-3명씩 짝을 지워 주면 파송하였습니다.
요4:37 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
오늘 4명의 친구는 서로 격려하며 약한 자를 세우면서 병든 친구를 예수님에게로 인도하였을 것입니다.
침상을 메고 가는 것은 서로 힘과 균형을 맞추어야 할 것입니다. 특히 지붕에서 침상을 내릴 때는 힘 조절이 중요할 것입니다. 힘이 없는 친구는 힘을 더 주고, 힘이 있는 친구는 절제하면서 서로의 보조를 맞추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병상의 환자는 떨어지고 말 것입니다.
퀴즈문제입니다. 하나면 강하고, 둘은 약하고, 셋은 나누어지는 것은 무엇입니까?
한국 사람입니다. 하나가 되지 못하는 한국 사람을 놓고 빗대는 서글픈 이야기 입니다.
마귀의 일은 분쟁이며, 나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은 우리를 나뉜 것을 하나 되게 합니다.
전도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힘을 합하여 할 때 큰 효과를 발휘합니다. 4명의 친구가 한 마음이 되어서 한명의 친구를 주님께로 인도한 것처럼 우리 모두가 하나가되어 주님에게로 사람을 인도합시다.
우리 동북교회와 신동중앙교회는 이를 위하여 이번에 리더 수련회를 가졌습니다.
사람을 살리는데 동참하는 식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세상이 급변하고 있습니다. 급변하는 세상 속에서 교회도 세상과 함께 변하여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세상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그 변화는 여전히 세상을 향하여 우리가 구원선임을 알리고 난파한 사람들을 구원하는 사역입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난파하여 떠돌고 있습니다. 한 사람이라도 구원하여야겠다는 예수님의 심정이 오늘 우리의 심정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 교회와 성도들은 중병에 걸려 있습니다.
전도하지 않는 병입니다. 교회 내 은사학교니, 열린 예배니, 제자 훈련이니, 성령집회 등이 있지만 그 결과로 나타는 것이 전도인데 전도의 열매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전도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까?
내 안에 전도에 대한 열정이 살아있습니까?
최근 1개월 동안 전도를 해 본 경험이 있습니까?
한 영혼이 주님께로 돌아오는 것을 보며 기뻐한 적이 언제입니까?
제가 여러분에게 돈을 100억을 준다면 구원과 바꾸겠습니까? 바꿀 사람 손들어 보십시오.
우리에게 이렇게 소중한 구원이지만 믿지 않는 사람들은 이해를 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구원의 가치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행16장에 마게도냐 사람들이 예루살렘 총회에 호소합니다. “와서 우리를 도우라”
지금도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호소합니다. 살려 달라고 아우성입니다. 와서 우리를 도우라. 와서 우리를 도와 달라. 도움의 손길을 찾아 마약을 합니다. 도움을 손길을 찾아 이방종교를 찾습니다. 도와 달라고 돈을 모읍니다. 세상은 교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기다리다 지쳐 세상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자들에게 의지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보고만 있습니다. 나는 구원받았다. 나는 부족함이 없다.
죽어져 가는 사람들에게 해답은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길을 잃어 헤매는 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길이 없음을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수고 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는 자들에게도 예수 외에 쉼이 없음을 알려야 합니다.
교회만이 세상의 소망입니다. 예수님만이 세상의 희망입니다.
우리는 죽은 세상에 대한 희망의 등대입니다. 우리가 바로 이 일을 위하여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사명자입니다.
사명자는 일어나야 합니다. 우리는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사명을 망각한 채 연민과, 안타까움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열정과, 시간과, 은사를 다른데 허비하여 버리고 우리의 제일 되는 사명을 감당할 여력이 없습니까?
주님의 지상명령은 우리가 완수하여야 할 명령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하라
“주의 도를 땅위에, 주의 구원을 만방 중에 알리게 하소서”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