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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년 6월 10일 금요기도회 설교
    카테고리 없음 2011. 6. 16. 20:14

    2011년 6월 10일 금요기도회 설교

    본 문 : 눅 17:11-19 제 목 : 감사는 기적을 낳는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늘 좋을 때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Up & down이 있기 마련이고 때론 위기가 찾아옵니다. 위기가 올 때는 대체적으로 sign이 있는데 그것은 내 입술에 감사가 없어져 간다는 것입니다. 가정과 직장과 사역 현장에서 감사하다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면 벌써 위기를 맞은 것입니다. 건강한 교회를 보면 성도들의 입술에서 감사의 표현이 끊이지 않고 해 같이 밝은 표정으로 신앙생활을 합니다. 삶에서 조건과 환경이 달라지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웬지 삶이 넉넉해 보입니다. 여러분도 밝은 미소와 감사의 얼굴로 신앙 생활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감사는 예수님도 좋아하시는 단어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감사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지만 문맥을 보면 예수님께서 얼마나 ‘감사’를 강조하시는지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가시는 중에 10명의 문둥병자를 만나시고 그들의 간청에 의해 병을 고쳐주십니다. 그러나 문둥병의 고침을 받고도 예수님께 와서 감사하다고 한 사람은 사마리아인 혼자뿐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사람 때문에 감격하시지만 나머지 9명에 대해서는 17-18절에서 보이듯이 섭섭해 하십니다. 10명이 다 같이 은혜를 받아도 그 은혜에 감사하는 자가 한 명에 불과할 만큼 감사할 줄 아는 자가 드문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성숙한 사람은 하나님께 받은 것에 집중하고 그것을 누릴 줄 알며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받은 것을 더 개발 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미숙한 사람은 하나님께 받은 많은 것 보다 받지 못한 적은 것에 집중하며 남이 가진 것을 보고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감사할 줄 아는 자들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감사합니다. 감사는 소유의 넉넉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깨달음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감사 생활은 부자의 소유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자들의 소유물임을 믿습니다. 저는 예수 믿는 사람들 중에 부자가 많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합다. 

        어떤 사람이 부자입니까? 어떻게 나도 만족하고 상대방도 만족할 수 있는 부를 누릴 수 있습니까? 방법은 재물을 늘리던가 욕심을 낮추는 것입니다. 가진 것으로 만족하는 것입니다. 결국 물질의 넉넉함의 기준은 자신의 선택에 달려있습니다. 오늘 후로는 진정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감사 생활을 체험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주님께 감사함을 통해 기적을 창출하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감사를 통해 우리를 어떤 축복의 통로로 이끌어 가시는지 말씀을 통해 알아보겠습니다.

     

    1) 사랑은 치유의 통로입니다.

        넉넉한 사람이 감사의 조건이 많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해입니다. 오히려 가진 것은 부족해도 입술에서 감사가 끊이지 않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주님은 각별히 소외된 자에게 관심이 많으셨습니다. 주님은 문둥병자들을 찾아가십니다. 문둥병자들은 사마리아와 갈릴리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는 소외된 한 촌에 살고 있었습니다. 버림받고 격리되어 살아야 하는 한이 서린 곳이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저주 받은 자, 불쌍한 자라고 떠들고 다녀야 하는 몸이었습니다. 육신의 병보다는 더 깊은 마음의 상처를 가진 외로운 문둥병자들이 모여 살았던 것입니다. 그 가운데서도 1명의 사마리아 인은 더 외로웠습니다. 서로 위로하고 아끼지 못하고 9명의 유대인들은 이 사마리아인을 따돌리며 무시했을 것입니다. 품어주지 못하고 변화되지 못한 것입니다. 변화되길 원한다면 서로를 아끼고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는 힘든 삶의 현장 가운데에 있습니다. 환경만을 본다면 감사하지 못할 99가지의 조건이 있더라도 그것을 뛰어넘는 주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이 있다면 그곳이 감사의 근원지가 될 것입니다. 바로 이 현장을 통해 풍성한 사랑과 감사의 고백이 터져 나올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고통은 감사의 통로입니다.

        문둥병자들에게 가장 심각한 것은 고통을 모른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고통을 느끼지 못하고 죽어갔습니다. 고통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닙니다. 고통을 받을 때 고통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고통을 본능적으로 싫어하지만 고통을 느끼는 것은 우리의 감각이 살아있다는 증거이고 이로 인해 더 큰 병을 막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고통을 느끼는 것은 감사입니다. 고통까지도 하나님께 감사하여야 합니다. 작은 죄를 짓고 가슴이 뛴다면 이는 오히려 건강하다는 신호입니다. 문둥병자들은 비록 통증을 모르지만 그들이 중병에 걸렸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께서 병을 고치신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절망 중에 참 소망을 얻은 것입니다. 예수님만 만난다면 자신의 문제는 해결 된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주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예수님이 그들 모두의 간구에 응답하셔서 치유받는 기적을 체험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이렇듯 인생의 문제는 하나님이 오시면 해결해 주십니다. 예수님이 계신 곳이 은혜의 자리임을 믿고 그 자리에 나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은혜 받는 비결입니다. 그런데 은혜가 임했던 곳은 멋진 곳이 아니라 마른 뼈가 뒹굴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와 같이 절망과 어둠이 서린 곳이었습니다. 이곳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 치유와 회복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많은 고난과 환란 중에 살지만 우리 주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찾아오셨기 때문에 이곳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느 곳에 있던지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의외의 장소에 찾아오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성장한 나사렛은 사람들이 천한 곳이라고 여기던 곳인데 그곳에서 정말 선한 것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처지는 어떻습니까? 불투명한 미래와 막힌 처지로 인해 자포자기의 심정에 있지는 않습니까? 하지만 낙심할 때가 아닙니다. 주님이 오시면 그곳이 축복의 환경으로 변화될 줄 믿습니다. 중요한 것은 환경과 조건이 아니라 지금 내 옆에 하나님이 계시느냐 아니냐 입니다. 그러므로 감사는 역설적입니다. 때가 지나면 문둥병에 걸렸던 것, 소외되고 버림받았던 것이 축복이 됩니다. 문둥병에 걸리지 않았었다면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내가 건강하고 유유 자적하다면 예수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로 고통의 치유함을 맛보는 여러분이 되길 축원합니다.

     

    3) 기도는 기적의 통로입니다.

        문제를 만난 사람은 주님께 나아가 기도해야 합니다. 기적은 기도에서 시작됩니다. 12-13절에 보면 문둥병자들은 자신들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소리 높여 부르짖었습니다. 부르짖는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간절함과 애절함이 있습니다. 그 기도에 예수님이 돌아보셨습니다. 좋은 기회는 자주 오지 않습니다. 기회는 문제라는 가면을 쓰고 찾아오지만 그 때 우리는 주님께 부르짖으며 간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렘33:3절에서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말씀하신 것처럼 환란 날에 부르짖어 기도하길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문둥병자들의 기도에 응답하여 주셨고 깨끗함을 받습니다. 그런데 10명이 치유 받았지만 오직 사마리아인 한 명만이 다시 찾아와 감사함으로 주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오늘 본문 중 가장 감동되는 부분입니다. 그는 큰 소리로 기도했던 것만큼 큰 소리로 감사합니다. 감사는 표현입니다. 우리가 인생 중에 중요하게 여길 것은 표현입니다. 마음만 가지지 말고 표현해야 합니다. 내가 받은 축복을 잘 관리하는 것은 내 입술에서 감사하다는 표현이 떠나지 않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더 큰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18-19절에 보면 사마리아인에게는 육체의 치유뿐 아니라 영혼까지 구원받는 더 큰 은혜가 임합니다. 9명의 유대인들은 간구의 목소리는 컸으나 감사의 표현이 없었기에 육체를 치유 받을 뿐이었습니다. 우리 주변을 돌아보아도 간구하는 자는 많아도 감사하는 자는 적고 은혜를 받은 자는 많아도 그 은혜에 감사하는 자는 적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은혜를 가슴에 새기고 감사하는 성도들이 되길 축원합니다.

     

        이제부터 힘들고 어려운 형제, 자매에게 따뜻한 말로 격려하고 위로하길 원합니다. 내가 받은 은혜를 그들에게 베풀어도 오히려 나에게 상처를 입히는 자가 있더라도 하나님께 더 큰 감사를 올려드리기 바랍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아주 작은 것이라도 감사의 한 바가지를 내 심령의 우물에 부어 넣을 때 하나님께서 놀라운 기적의 생수를 부어 주실 것입니다.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이 사마리아인과 같은 한 명의 자리에 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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