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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1월 06일 수요기도회 설교카테고리 없음 2016. 1. 10. 21:22
2016년 01월 06일 수요기도회 설교
본문 : 사도행전 7장 54∼60절
제목 : 하늘이 열린 성도 찬송 : ‘불길 같은 주 성령’ 184장
우리나라가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면서 문제로 대두된 두 가지 질병은 골다공증과 치매입니다. 특히 치매는 인지기능 장애로 일상생활을 스스로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기에 두려움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육신의 치매도 걱정해야 하지만 영적 치매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영적 치매에 걸리면 자신이 누구인지 잊어버리고 땅에 매여 구별된 삶을 살지 못하게 됩니다. 하지만 하늘이 열린 성도는 절대로 영적 치매에 걸리지 않습니다.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죽음 앞에서도 최상의 믿음으로 승리하여 많은 사람에게 은혜로운 영향력을 끼치게 됩니다.
스데반 집사의 삶이 그러했습니다. 자신에게 돌을 던지는 사람들을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죽어가면서도 그들의 영혼을 위해 중보할 수 있을 만큼 스데반은 하늘이 열린 신앙의 소유자였습니다. 우리가 하늘이 열린 성도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수도꼭지를 잠그고는 물을 얻을 수 없듯 마음을 열지 않으면 하나님 말씀을 들을 수 없습니다. 마음이 열려야 말씀을 듣고 찔림이 올 때 회개하고 주께 돌이킬 수 있습니다(54절).
2. 하늘을 보아야 합니다(55절).
하늘을 우러러 사는 자는 가난해도 영광이 나타납니다. 실패해도 영광을 돌릴 수가 있습니다. 환난 중에도 영광을 돌릴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영광은 성공이나 부요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라도 끝까지 하늘을 우러러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을 찬양하는 순교자의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먼저 생각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처럼 하늘을 우러러 주님의 영광만을 바라보는 자의 사람은 산 소망으로 가득하여 하늘의 신비와 은혜를 축복을 받게 됩니다. 가나안 땅이 하늘에서 내리는 모든 비를 흡수해 버리는 척박한 땅이었지만 때를 따라 도우시는 하나님만을 바라볼 때 축복의 땅이 될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가 하늘을 바라보며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시는 힘으로 살면 스데반처럼 우리에게 돌을 던지는 자를 위해 오히려 중보할 수 있습니다.
3. 기도해야 합니다(59절).
스데반은 자신을 돌로 치는 사람들의 손에서 구해 달라고 기도하는 대신 자신의 영혼을 주님의 손에 의탁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되기를 구했습니다. 아무리 기도를 많이 해도 자기 이야기만 한다면 아무 의미 없는 주문만 외우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내 안의 소원으로 시작했다가 하나님의 뜻이 내 안에 이루어지는 것이 기도의 응답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주님이 하신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되기를 원합니다”는 주님의 기도를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 것은 정욕으로 쓸려고 잘못 구함이라고 가르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되기를 기도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4. 용서해야 합니다(60절).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는 스데반의 기도 속에는 ‘내 탓’이라는 자책이 있습니다. 내가 복음을 제대로 전하지 못해 그들이 깨닫지 못할 뿐이니 저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는 것입니다. 십자가 복음은 용서입니다. 용서를 못하는데 어떻게 사랑을 할 수 있겠습니까. 사랑하기에 앞서 용서부터 해야 합니다. 스데반의 이 기도는 자신의 유익을 우선하지 않고 남을 배려하는 것을 앞세우면서 산 사람만이 드릴 수 있는 마지막 고백입니다. 자신의 유익보다 남의 유익에 더 큰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자신의 주장을 앞세우기보다 상대방의 입장을 먼저 이해하려는 자세입니다. 그것은 남을 자신보다 낫게 여기는 겸손함이기도 한 것입니다(빌 2:3).
자신을 향해 돌로 치고 있는 유대인들의 영혼을 깊이 사랑하는 마음이 스데반에게는 있었습니다. 그것은 스데반이 그들의 입장에서 그들의 행동을 이해하려고 애쓴 결과입니다. 곧 그들이 돌로 치고 있는 것은 잘못된 유대교 교리에 얽매여 예수 그리스도를 제대로 알지 못한 영적 우매함 때문입니다. 스데반은 이미 마음속으로 그들을 용서할 수 있었고, 더 나아가 그들의 용서를 하나님께 구할 수 있었습니다.
남을 용서하는 것은 남의 입장을 이해하려는 노력에서 시작됩니다. 곧 남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존재임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른 사람을 인격적으로 대하는 것이 곧 남의 입장에서 그들의 행동을 이해하는 아량과 배려입니다. 그런 자세로 산다면, 스데반처럼 자신을 죽이려는 사람까지도 용서할 수 있는 위대한 기도를 남길 수 있는 것입니다. 스데반의 이 기도는 십자가 위에서 주님이 하신 기도이기도 합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스데반이 그랬던 것처럼 주님과 함께 걸어가는 우리의 영적인 삶의 여정 앞에도 하늘 문이 열리기를 소망합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은혜가 많은 사람에게로 흘러가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앞에 하늘 문이 열려서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축복이 열방 가운데로 흘러가는 귀한 역사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