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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년 10월 19일 수요기도회 설교
    카테고리 없음 2016. 10. 20. 17:51

    20161019일 수요기도회 설교

     

    본문 : 21:1-13

    제목 : 나는 그대를 사랑하나...

     

    바울은 유대인들을 위한 애타는 심정을 가졌습니다. 그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면 어떤 희생이라도 감내할 마음이 있습니다. [3]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4] 저희는 이스라엘 사람이라 ...”(9:3-4)

    그것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간절함입니다. 진리를 알고, 복음 안에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복음에서 전혀 상관이 없는 불쌍한 선민을 위한 애통입니다.

    바울은 그들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그는 예루살렘에서 미움과 핍박과 반대를 당합니다. 심지어 그를 죽이겠다는 사람까지 만나지만 그의 사랑을 그치지 않습니다.

    "나는 사랑하나 저희는 도리어 나를 대적하니 나는 기도할 뿐이라"(109:4)

     

    1. 아가보의 만류(21:7-14)와 바울의 죽음을 각오한 사랑의 열정

     

    예루살렘을 향하는 바울의 심정은 어떠할까요? 5년 동안에 걸친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바울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가이사랴에 들렀을 때 그는 아가보라는 선지자의 예언을 듣게 됩니다.

    우리에게 와서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말하기를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주리라... ”(21:11)

    예루살렘으로 가면 틀림없이 결박당하고 어려움만 당할 것이니 가지 말라고 간곡히 부탁을 합니다. 그런데 바울의 대답은 놀랍습니다.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21:13)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14:8)

     

    2. 하나됨을 위한 바울의 노력들(21:17-26)

     

    [17] 예루살렘에 이르니 형제들이 우리를 기꺼이 영접하거늘 [18] 그 이튿날 바울이 우리와 함께 야고보에게로 들어가니 장로들도 다 있더라”(21:17-18)

    바울의 가슴에는 수많은 이방인들이 구원받은 감동의 소식과 그의 손에는 예루살렘교회를 향한 사랑, 어려운 가운데도 헌신한 이방교회의 헌금이 들려있었습니다.

    여러 해 만에 내가 내 민족을 구제할 것과 제물을 가지고 와서”(24:17) 예루살렘 교회와 이방인과 하나되는 거룩한 만남이 있기를 기대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어떻게 도우셨는지, 어떻게 역사했는지 침이 마르도록 하나님의 역사를 찬양했습니다.

    야고보는 하나되기 위하여 예루살렘 교회에는 율법에 열성을 가진 사람들이 많으니 율법을 지키는 신실한 마음을 보여야 한다고 제안하였습니다. 그래서 나실인의 서원을 하고, 결례예식에 참여하는 너그러움과 관대함을 보여 줍니다. 이것은 사실 꼭 필요한 절차는 아니나 융화되기 위한 간절함의 표현이었습니다. 이래라도 하나 될 수 있다면 하는 간절한 바울의 마음이었습니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입견과 오해는 바울을 가만히 두지를 못했다(21;27-40)

     

    하나됨을 위한 바울의 헌신과 겸손, 배려는 얼마나 놀랍고 큰 것이었습니까?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바울이 이방인과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이렇게 비난했습니다. 외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도우라 이 사람은 각처에서 우리 백성과 율법과 이곳을 훼방하여 모든 사람을 가르치는 그 자인데 또 헬라인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가서 이 거룩한 곳을 더럽게 하였다 ...”(21:28) 하는 거짓된 고소에 온 성이 소동하여 백성이 달려와 모여 바울을 잡아 성전 밖으로 끌고 나가니 문들이 곧 닫히더라”(21:30)

    사람들은 늘 있는 데로 보지 못하고, 보고 싶은 데로 봅니다. 편견과 선입견에 사로잡힌 그들의 눈에 바울은 율법을 허는 자요 성전을 더럽게 하는 자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결코 그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바울도, 스데반도, 예수님도 율법을 무너트리는 자가 아니라 진정한 영광을 드러내시려는 분으로 사셨습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5:17)

    “[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17]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전3:16-17)

     

    말씀을 맺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바울은 오해와 미움으로 대하는 자들을 희생과 참음과 헌신으로 그리고 겸손하게 대했습니다. 배려했습니다. 바울의 관심은 복음의 진보, 하나님 나라의 확장 그리고 민족의 구원이었습니다. 과연 나는 내 주변의 복음을 오해하는 자들에게 어떻게 사랑과 너그러움으로 복음을 효과적으로 내고 있습니까? 바울같이 쓰임받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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